1. 초나라의 멸망
진나라는 기원전 226년 한나라의 구 귀족들의 반란에 놀랐고, 점령만 하면 군민들은 손쉽게 통치할 줄 알았지만 그들은 만약 진나라가 흔들리면 다른 점령지의 군민들 모두가 들고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초나라는 남쪽의 진나라의 영토와 버금가는 대국이었고, 비록 회왕 이후에 나라는 쇠퇴하였지만 상기 위나라나 한나라처럼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진나라는 기존에 연나라와의 전쟁에서 용맹을 떨쳤던 이신과 몽염 장군을 기용하여 기원전 225년에 20만 대군으로 공격을 시작한다. 이신은 군을 몽염과 반으로 나눠서 평여지역과 침구를 공격하였고 초나라 군을 순차적으로 격파하였다. 순식간에 초나라의 수도 수춘까지 압박해 들어갔다. 당시 초나라는 이미 쇠퇴한 상태였고, 유일하게 믿을 장수는 항우의 할아버지로도 유명한 항연장군 뿐이었다.
초나라는 진나라에게 영토를 할양하는 조건으로 협상을 하였고, 진나라는 원활한 통치를 위해 창평군을 활용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진나라로부터 파견된 초나라 공자 창평군이 오히려 반진세력을 결집하였고 이로 인해 진나라는 예상치 못한 반란으로 인해 보급이 차단당하고 퇴로가 막혔다. 동시에 항연이 군사들을 이끌고 틈을 놓치지 않으면서 공격해 들어갔고 진나라는 패배하고 말았다.
진나라의 시황제는 초나라가 만만치 않은 상대임을 깨달았고, 일전에 배제시켰던 노장 왕전을 다시 기용하기로 하고 친히 왕전의 집을 찾아가서 노장군 왕전에게 60만의 대군을 주며 초나라 공격을 명한다. 만약 진나라입장에서는 초나라에게 또 패해서 이들이 북상한다면 위나라와 한나라 귀족들이 호응하여 반란을 일으킬 것이 자명했기 때문에 왕전은 말 그대로 초나라의 운명을 등에 업고 출전하였다.
진나라는 당시에 공격자답지 않게 수비적인 전략을 취하였는데, 이는 위/한/조 3국을 멸망하여 후방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였고, 상앙개혁을 통한 정치 및 경제시스템의 선진화로 대량의 물자 지원이 가능하여 장기전을 펼칠 수 있는 여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진나라는 장기간 대치하면서 군사들을 훈련하고 배불리 먹일 수 있었고, 초나라는 장기간 대치하면서 오히려 생산력이 진나라에 비해 떨어졌기에 점차 균열이 생겨났고, 경제뿐만이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불안감이 가득했기에 점차 진나라 쪽으로 승기가 기울기 시작했다. 초나라는 1년 넘는 대치 끝에 동쪽으로 철군하였고, 진나라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맹공을 퍼부으면서 초군을 격파하고 항연도 전사하고 만다. 왕전은 기세를 몰아서 수도 수춘을 공격하여 초왕 부추를 사로잡았다. 이후에 창평군이 회남에서 초왕으로 옹립되었으나 기원전 223년 왕전이 회남까지 공격해 들어가면서 창평군이 죽으면서 초나라는 완전히 멸망하고 만다.
2. 연나라의 멸망
조나라가 무너지면서 진나라의 다음 상대는 자연스럽게 연나라가 될 수 밖에 없었고, 군사들은 진군하면서 연나라 국경에 이르렀고, 연왕 희는 이 기세에 놀라 겁을 먹었다. 이때 태자 단은 서쪽으로는 조나라의 잔존세력과 남쪽으로는 제나라와 연합하고 초나라와는 동맹을 맺으며 북쪽의 흉노와는 우호관계를 형성하여 합종형태로 진나라에 다시 대항하려고 했으나 이미 대세가 기울어진 상태에서 이러한 이상이 이루어지는 것은 어려웠다. 태자 단은 진나라의 핵심인 시황제를 암살하기 위해 자객인 형가를 파견하여 기원전 227년 암살하려고 하였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진나라는 분노에 휩쌓이며 왕전으로 하여금 연나라를 공격하게 하였고, 순식간에 연나라 수도인 계성까지 점령하였다. 연나라왕과 태자는 양평으로 도주하였는데, 연나라의 운명이 다하였는지 이때 진나라 장군 이신에 의해 주력군 대부분이 기습에 의해 패퇴하였고, 연왕 희는 판단력을 상실하였는지 태자 단을 자객을 보내 죽이고 그 목을 진나라에 바치게 된다. 진나라는 이때 연에 대한 공격은 멈추지만 초나라 평정을 완료하자마자 기원전 222년 진나라 장군 왕분은 군사를 이끌고 요동을 공격하여 연왕 희를 포로로 잡으면서 연나라는 멸망하고 만다.
연나라 입장에서는 조나라가 힘을 쓸 수 있던시기에 조나라를 돕지 못하였고, 이는 마치 입술을 잃고 이를 보호할 방법이 없었고 연나라는 자연스럽게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었다.
3. 제나라의 멸망
제나라는 기원전 284년의 제서전투 이후로 국력은 쇠퇴하였고, 제나라는 군사적으로 큰 패배를 겪은 후에 출병을 수십년간하지 않으면서 군사력은 매우 약한 상태였고, 제나라 재상은 진나라에 완벽하게 매수되어 진나라에게 공격받는 국가들을 지원하지 않게 막았고, 덕분에 진나라는 손쉽게 제나라 주변 국가들을 평정하면서 국경을 맞닿게 되었다.
제나라는 뒤늦게 진나라에 대항하기 시작하였고 서쪽으로 주력군을 집중시키면서 진나라 장군 몽염과 대치하였다. 당시 제나라는 서쪽으로 장성을 길게 쌓아서 견고하게 방어를 하였고, 진나라의 군대는 강하였으나 이런 방어선을 뚫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북부는 연나라와 맞닿은 상황에서 방어가 상대적으로 허술하였고, 연나라가 멸망 후 진나라는 연나라 남쪽에서부터 출병하여 제나라 북부를 공격하였는데 너무나 그 방비가 허술하여 순식간에 수도 임치까지 포위하게 된다. 수도가 포위됨에 따라 제나라는 순식간에 무력화되었고, 진나라는 재차 제나라에게 항복을 권하였고, 제나라의 재상마저도 진나라에게 매수된 상황에서 항복을 권하니 제나라 왕 건은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항복 후 제나라 왕은 연금되어 굶어 죽고 매수한 재상 또한 쓸모가 없어지며 처형하게 된다.
기원전 221년 진나라는 드디어 중국최초의 통일을 완성한 왕조가 된다. 진나라는 처음에 일개 변방 국가에 불과했지만 지리적 이점을 충분하게 활용하고 법가 사상에 의해 나라를 통치하면서 강력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초로 하였고, 외교적으로 합종책을 분쇄시키면서 육국을 하나씩 격파해 나갔고 결국 최종 승리자가 된다.
다음편은 짧지만 강했던 진나라 시대의 이야기를 다루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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