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통일의 사전 작업 - 진의 조나라 공격
(1) 1차 공격
진나라는 전국 통일 전쟁을 시작하면서 그 첫 번째로 제압해야 할 상대는 조나라로 생각하고 있었다. 국경을 마주하면서 양질의 군사력을 가진 조나라는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이에 기원전 236년에 이사의 계략으로 조나라와 연나라 간의 이간책으로 인한 전쟁이 발발하였다. 조나라의 주력군이 연나라와 전투를 벌이는 동안 진나라는 남북으로 루트를 구성하여 조나라를 파죽지세로 공격해 들어갔다. 그러나 조나라의 유목왕은 상황을 뒤늦게 인지하여 연나라에 출전한 군대를 불러들이고 수도 한단의 남쪽 장수지역과 북으로는 태항산에 이르는 장성에 의지하여 방어를 하였다.
이때 진나라 내부에서 승상 여불위과 반란사건과 연루되는 사건도 발생하며 내부적으로 분위기가 뒤숭숭해졌고, 이러한 내부문제에 더하여 우호 조약을 체결한 위나라가 초나라를 공격함에 따라 이를 돕기 위해 초나라를 공격하면서 1차 공격은 끝이 났고 양국은 휴전에 들어가게 된다.
(2) 2차, 3차 공격
진시황과 그 지도부는 조나라와의 전쟁을 마무리하지 않고 초나라를 공격하는 전략을 다시 전환하였다. 결국에 그들은 초나라 보다는 조나라를 큰 적수로 생각했던 것 같다. 이에 다시 조나라를 공격하였고 위의 장성을 우회하여 수도 한단의 남동쪽인 평양과 무성을 공격하였고, 이때 진나라의 번오기는 조나라군을 격파하고 승승장구를 거두었다. 번오기는 북상하면서 한단의 배후까지 들이쳤지만, 조나라는 이목을 대장군으로 하여 맞서 싸웠다.
당시 이목은 진지를 높게 구축하여 방어만 하고 싸움에는 응하지 않았다. 진나라는 이때부터 먼 길을 와서 보급선이 취약했고, 장기전으로 갈 수 있는 여력이 없었다. 이에 번오기는 싸울 수밖에 없는 입장에 내몰리자 주력으로 비하를 공격하였고 이때 그는 비하를 조나라가 구원하러 올 때 격파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목은 이를 역이용하여 조나라 군대는 진군의 진지를 기습하여 점령했고, 진나라 주력군 대부분은 비하를 공격하느라 방어를 전혀 할 수가 없었다.
진나라는 보급선이 끓기는 소식을 듣자 황급히 퇴각하나, 이를 예상한 조나라 군대에게 기습을 당하고 비 전투에서 진나라군대 10만명이상이 섬멸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진나라의 번오기는 이 패배 이후 두려움에 연나라로 도주하면서 2,3차 공격은 조나라의 승리로 마무리된다.
(3) 4차 공격 그리고 제나라와의 동맹 실패
진나라는 기원전 232년 업성과 태원 남북으로 나눠서 조나라를 침공하는데, 조나라는 이때 다시 이목을 대장군으로 하여 방어를 한다. 하지만 조나라는 자연재해로 인해 농작물 수확이 어려웠고, 진나라와의 전쟁으로 국가는 피폐해져 갔다. 조나라 입장에서는 빠르게 전쟁을 마무리하려고 했다.
이에 조나라는 남쪽을 사마상이 막으면서 이목은 주력으로 북쪽으로 가서 진나라 군을 격퇴하였고, 원래 진나라는 남북 양쪽에서 동시에 진군하기로 하였으나, 북쪽에서 패배 소식을 들은 남쪽 군도 패배 소식을 들으면서 퇴각하게 된다. 이로써 4차 공격은 끝나는데 조나라도 당시에 타격이 막대하여 더 이상 반격을 할 수는 없었다.
조나라는 진나라를 막기 위해 제나라의 물적, 인적자원을 활용하기 위하여 동맹을 요청하려고 했지만, 이 소식은 진나라에게도 들어갔고, 진나라는 이를 방해하기 위해 금은보화를 이용하여 제나라 관료들을 매수하여 동맹은 실패하게 되었다. 이때 가뜩이나 어려운 조나라는 더 어려운 국면에 처하게 된다.
2. 가장 약한 국가 매수에 의해 망하다 - 한(韓)
한나라는 이전에도 언급한 것처럼 매우 약한 국가였다. 조나라의 공격이 번번이 실패하자 진나라의 시황제는 율료의 간언을 받아들여 직접공격과 동시에 다른 6개 국가의 신하들을 매수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당시에 약 30 만금을 사용하였는데, 이는 진나라 국고의 거의 전부였고, 시황제는 그를 믿고 매수 작업을 허가하였다.
이에 첫 번째 목표가 된 한나라는 영토 대부분을 이미 잃었고 남은 영토는 고작 수도 신정과 양적(남양)이라는 도시 밖에 없었다. 이때 남양의 담당 관리는 등이라는 자로 한나라의 귀족도 아니고 충성도가 낮은 사람이었고, 적극적으로 매수공작을 펼치면서 기원전 231년 남양태수가 남양을 통째로 진나라에 받치게 된다. 진나라는 남양을 얻어 등을 태수로 세우며, 말 그대로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땅을 얻는다. 남양은 바로 진나라의 전진공격기지가 되었고, 기원전 230년 등을 내사로 임명하여 10만의 진나라 군사를 이끌고 조나라를 공격하는 척하다가 한나라 수도 신정을 포위하였다.
한나라는 이미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고, 기존에 항복한 자들도 좋은 대접을 받는 것을 보면서 자신들도 전부 투항을 고려하였다. 한나라 왕인 안은 항복권유를 받고 후작지위 보전을 약속했다. 이에 한나라는 내부적으로 토의를 거친 뒤 결국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하고 진나라에 항복하고 한나라는 멸망한다.
한나라 멸망 후 약속과 다르게 왕을 황산으로 유배시켰고, 진나라 관리들을 파견하여 수도인 신정을 통치하였다. 한나라 군사는 전부 진나라에 편입되고 귀족들은 쫓겨나고 영지도 대부분 몰수당한다. 진나라의 이러한 모습에 한나라 구 귀족들은 불만을 가지고 내부적으로 반란을 일으키지만 결국 실패하고 만다.
이후에도 대부분의 국가들이 단순히 힘에 의해 멸망하기보다는 내부의 중요 대신들 대부분이 매수당하게 되어 가뜩이나 명장들이 겨우겨우 버티면서 방어하는 순간 내부에서 판단력을 잃으면서 충신들을 내치게 되니 망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고 말할 수 있다.
다음 편에는 진나라의 통일과정 2번째 이야기인 조나라의 멸망부터 다루고자 한다.
'중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국사 8편 - 진(秦) 중국의 첫 통일왕조 4부 (0) | 2023.01.09 |
---|---|
중국사 7편 - 진(秦) 중국의 첫 통일왕조 3부 (0) | 2022.12.31 |
중국사 6편 - 진(秦) 중국의 첫 통일왕조 1부 (0) | 2022.12.24 |
중국사 5편 -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 중국의 첫 혼란기 (0) | 2022.12.13 |
중국사 4편 -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 중국의 첫 혼란기 (0) | 2022.1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