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조나라의 멸망

조나라는 전편에서 언급한 4차 침공 이후, 회복의 시간이 없었고, 진나라는 한나라를 흡수하면서 군사력은 증가되고 영토가 오히려 늘어나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조나라는 천재지변에 시달리면서 나라 대부분이 대지진으로 인해 건물이 무너지고, 가뭄이 발생하면서 기근으로 고통을 받게 된다. 이러한 고통에 진나라의 왕은 정벌을 미루려고 하지만 신하들은 어려운 시기야 말로 우리가 공격해야 할 좋은 시기라고 전언하며, 가장 위협적인 적인 조나라를 두 번째 공격 대상으로 삼는다. 전에 언급한 장평대전에서 대패하여 수십만이 몰살당한 조나라였지만 군사력은 여전히 강한 편에 속하였다.

진나라는 기원전 229년 30만 대군을 이끌고 3개 방향으로 나눠서 수도 한단으로 향했다. 진나라는 남북으로 협동하는 모양새로 공략하려고 했지만 조나라 최후의 명장인 이목과 사마상은 이에 대비하여 성을 굳건하게 지키며 농성을 준비하였고, 해자와 보루를 튼튼하게 쌓아서 진나라의 공격을 수차례 격퇴시키는 성과를 거두었다. 진나라의 왕전은 이러한 이목이 걸림돌이라고 생각했고 군사적으로는 우세에 있었지만, 조나라 군은 북방에 있으면서 군 전체적으로 기동력이 우수한 편이어서 쉽게 군을 나눠서 공격하기는 어려웠다. 이에 왕전은 병사들에게 수비만 명하면서 중앙 조정에 이목을 제거해달라고 지속적으로 요청하게 된다.

조나라는 이미 진나라를 막아내는데 힘에 겨웠다. 지난 4차례 침공에서 계속되는 소모전으로 이기기는 했지만 병사들을 계속 잃고, 한나라의 전력까지 흡수 해버린 진나라는 그야말로 무적 그 자체였다. 또한 진나라 군을 또 격퇴해도 순식간에 재정비를 하여 진나라는 또다시 침공할 것이고 조나라는 열세 몰려 언젠가는 무너질 운명이었다. 조나라의 이런 상황 때문에 장군과 군사들은 밖에서 선전했지만, 내부적으로 신하들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진나라는 이러한 틈을 눈치채고 반간계를 펼쳤는데 제거 목표는 바로 조나라 명장 이목하고 사마상이였다. 진나라는 반간계를 펼치기에 앞서 조나라의 재상 곽개를 매수하였다. 곽개는 조나라 유목왕이 태자 시절부터 총애해온 대신인데 탐욕이 강하고 아첨을 잘하는 자였다. 그는 조나라의 염파마저 모함을 했던 전과가 있었고, 진나라는 그러한 곽개를 이용하기 위해 조나라의 첩자들을 활용해 황금을 바쳤다. 곽개와 더불어 조나라의 태후 이전에 이목에게 모욕을 당하고 본인의 출신이 미천한 점을 비판하였던 이목을  미워했기에 둘이서 동시에 이목을 모함하였다.

곽개는 이목의 필체까지 베껴서 적극적으로 모함하였고, 유목왕은 이런 말에 속아 넘어가면서 이목의 병권을 회수하고 왕족인 조총에게 통수권을 부여한다. 하지만 이목은 이를 거부하다가 유목왕이 보낸 암살자에게 참살당하고, 사마상이 간언을 올리지만 그러한 사마상마저도 파면 당하고 만다. 이렇게 조나라의 두 기둥이 뽑히면서 사기는 그야말로 땅에 떨어졌고, 진나라는 파죽지세로 조나라를 뚫게 되었고, 한단을 포위하였다. 이에 조나라는 결국 항복하고 유목왕은 유배되었다. 조나라의 마지막 남은 공자인 조가는 일부 장군과 병사들을 이끌고 북쪽 대군이라는 곳에서 조왕으로 칭하며 저항했지만 이마저도 기원전 222년 진나라 왕분의 공격을 받고 멸망하고 만다. 이렇듯 유일하게 마지막 남은 충신인 이목과 사마상을 내친 조나라의 패배는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2. 위나라의 멸망

 진나라는 기원전 226년 연나라 수도 계를 점령하면서 진나라 장군 왕전의 아들은 왕분은 병사를 이끌고 초나라의 북부 지역을 휩쓸면서 초나라를 궁지에 몰아넣음 과 동시에 기원전 225년에 왕분의 군사들이 다시 위나라를 기습적으로 공격하면서 위나라의 수도 대량을 순식간에 포위하였다. 

위나라의 수도 대량은 오랜기간 외적의 침입을 방어하면서 비교적 견고한 도시였고, 진나라 군사의 사기는 높았지만 위나라 군사 숫자도 10만이 넘고 물적자원도 충분하여 방어를 튼튼히 하고 있었다. 수차례 공세에도 위나라는 흔들리지 않았고, 하나 둘 멸망이 가까워지자 다른 나라들도 반란이나 아니면 방관하던 국가들 또한 대비태세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진나라는 이렇게 위나라 공략에 애를 먹자 방법을 바꾸기로 하였는데 바로 수공이었다.

일찍이 신릉군이 한나라를 구하기 위해 위나라에 유세를 펼칠 때 수도 대량이 수공에 취약한 점을 경고하였다. 대량은 황하와 인접하여 지세가 낮아서 언제든 수공의 위험성이 있었고, 진나라의 왕분은 군사들에게 대량 주위의 수로를 장악하여 제방을 쌓고 황하의 물길을 틀어내는 공사를 하였다. 이후 10일에 걸쳐 내린 비에 물이 쌓였고 둑을 터트리면서 대량성은 물바다가 되었다.

위나라의 수도가 이렇게 수공으로 파괴되자 수 많은수많은 사상자가 났으며, 구원군은 없었다. 더불어 수많은 백성들의 피부와 곡식이 물에 잠겨서 썩어 들어갔고, 마실 수 있는 물이 고갈되었다. 또한 성벽도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왕분은 총공세를 펼쳤고 수 차례 교전 끝에 위나라는 진나라에게 결국 항복하였다.

정공법으로 겨우 막아내던 진나라였는데 위나라는 수공을 당하니 도저히 막을 수 없는 것은 당연했다. 당시의 하늘은 진나라 편이였는지 정공법이 안 되면 수공까지 어떠한 전략을 써도 다 통하였고 이를 통해 계속되는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 이렇게 기존에 삼가분진(三家分晉) 이후의 삼국 모두 멸망당하고 만다.

 

이제 육국 중에서 초나라, 연나라, 제나라가 남았고 3개 나라 모두 진나라 입장에서는 손쉽게 공략을 하게 되는데 나머지 3개 국가 정벌하는 과정은 다음 편에서 다루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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